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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제목간질성 방광염을 앓고 있는 49세 여성2011-12-21 06:53
작성자 Level 10

 * 다음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애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April Bowen이 보내 준 사례이다.

JK는 49세 미국 여성으로 22년 전 간질성 방광염(interstitial cystitis)으로 진단 받은 후 심리상담, 침술, 생약, 카이로프랙틱, 영양/식이요법, 킬레이션, 최면, 치아에서 아말감 제거 등 다양한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녀는 동종요법 치료를 받아보기로 마음먹고 2009년 9월 동종치료사 April Bowen을 방문하였다. 

관찰) 그녀는 키가 크고(175cm) 호리호리하고 마른(52kg) 체격으로 길어 보이는 목을 갖고 있다.

동반증상)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염증, 저혈압, 저체중


방광염의 증상은?
지속적으로 쓰리고 아프다. 불이 나는 것 같이, 소변 보기 전, 보는 중, 본 다음 계속 아프다. 염증이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왔다 하는 것 같다 (손짓: 손을 물결치듯 소용돌이 모양으로 위, 아래로 움직임). 때로는 뜨거운 난로를 만지는 것 같은 예리한 통증이 느껴질 때는 벗어나고 싶지만 잡혀서 벗어날 수 없다. 

소변 볼 때 피를 짜내는 것같이 느껴진다. 피부가 벗겨져서 생살이 드러난 것 같이 쓰리고 아프다. 단단히 꽉 끼듯이 조여온다(손짓: 소용돌이 치듯이 조이는 움직임) 너무 아파서 밀어내고 싶다(손짓: 방광을 아래로 밀어내는 듯한 움직임). 거기가 너무 예민해져서 쉽게 아프다. 그래서 남편과 관계도 힘들게 되었다. 통증을 일으키는 그 곳을 밀어내고 싶다(손짓: 밖으로 밀어내는 움직임). 조이고, 뜨거운 난로를 만지는 것 같이 아파서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고 한 방울 씩 내보낸다. 

소변이 급하게 마려워 때로는 옷에다 실례를 하기도 한다. 소변이 다리를 타고 내려올 때 너무 창피하다(움추리면서 얼굴을 가림). 잘 참지 못할 때에는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요로감염은 22년 전에 처음 생겼다. 그 당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혼한 지 5년차였는데 수련원(ashram)에서 살고 있었다. 채식을 하면서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그 곳이 좋았다. 남편과 나의 관계는 친밀했고, 안전하다고 느꼈다.

공동체 생활이었고 모두 한 가족이었고 아주 편안했다. 그들이 항상 말하기를,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아래로 추락한다”. 그런데 우리는 쫓겨났다. 남편이 그들에게 맞서서 대항하였고, 그들은 우리를 호되게 처벌했던 것(손짓: 주먹으로 손바닥을 침). 남편을 쫓아내고, 나에게는 다른 남자와 혼인해서 살 것을 제안하였지만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우리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쫓겨났다. 거부당한 것이다(손짓: 한쪽으로 세게 밀어버림)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크게 배신감을 느꼈다. 

공동체에서 나는 탁아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4명의 애기를 돌보고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아마 어릴 때 학대를 받았기 때문인지 우는 애기를과는 잘 지내지 못한다. 참을성을 잃고 괴물로 변해버리는 것 같다. 2년 반 동안 이 일을 했는데 분노,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온다. 소리를 지르면서 그 애기들을 바닥에 던저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애기들이 먹지 않을 때 또한 참을 수 없었다. 애기들이 나를 겁내거나 나에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느끼면 화가 났다. 이는 나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독일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너무 가난해서 어떤 가정에 얹혀 살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집주인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이 집주인은 우리 가족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엄마는 내가 집주인을 무서워했다고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집주인이 나를 잡으려고 하면 겁이나서 발을 구르면서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것. 나의 아빠는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어서 나를 집어 들고 흔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목이 좋지 않다. 나는 그가 너무 무서워서 나를 잡지 못하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도 동생을 출산하고 난 후 분노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집에 오면 문간에서 엄마에게 맞곤 하였다.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엄마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애썼다’는 것. 엄마는 밤에는 일하러 나가고 낮에 애들은 학교에 있고, 집에서 홀로 잠이 드는 것을 무서워했다. 

성장기에 엄마는 나에게 항상 적이었다. 나는 항상 엄마에게 위협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아빠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항상 경쟁 중 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빠와 내가 성적인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우리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엄마는 나를 신체적으로 또는 말로 나를 때리고 공격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만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 사춘기에 나는 2년 동안 부모와 말을 하지 않았다. 지배에 맞서서 저항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우리 가족을 괴롭히는 마녀로 변해가고 있었다. 엄마가 내 어린 동생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을 때 너무 화가 나서 엄마에게 반격하고 싶었다. 아빠는 엄마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나는 아빠가 겁쟁이 같아서 미웠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진실을 말할 수 없으니까. 엄마는 화가 나서 우리에게 퍼붓다가 곧 우리를 위로하는 등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묵하는 것. 나는 몸이 얼어붙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현장에서 내가 하는 것은 꼼짝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뿐이다.

엄마는 경계의 대상. 엄마는 나와 아빠에 대해 질투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밤 아빠가 내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엄마가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 문을 닫고 뭐하고 있는거야?”. 나는 엄마가 너무 부끄러웠다. 엄마의 세계는 너무 제한되어 있고, 갇혀있다. 뭔가 보이지 않은 힘이 엄마를 끌고 다니면서 조정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렇게 끌려다닌다면 무기력하고 겁이 날 것이다. 
        
나는 누군가 침입해서 나를 강간할까봐 항상 겁이 나는데 아마도 엄마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내용의 꿈들을 연달아서 꾼다. 괴한이 나의 집을 침입, 강간을 하려고 한다. 때로는 괴한이 ‘이번에는 봐줄거야’ 하거나, 돌을 던지면서 간신히 도망가기도 한다. 밤에 남편이 외출하고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문이 모두 잠겨 있는지 확인한다. 남편이 출장 중에는 수시로 깨고, 작은 소음도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한다. 괴한이 나를 강간한 다음에는 칼로 토막을 내는 것이 상상이 된다. 때로는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가슴에서 느끼기도 한다. 

밤에 외출하게 되면 항상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경계한다. 누가 나를 덮처서 강간할까봐 겁이 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를 보호하지 못한 채 그냥 당하는 것. 그럴 때에는 나찌의 유대인 캠프가 떠오른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죽거나 굶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 굶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21살 적에 식욕부진증에 걸렸다. 음식이 내 몸을 해치는 것 같아서 음식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먹지 않았다. 단식을 하고 내 몸을 깨끗하게 정화를 해 보았지만 내 병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지금도 음식이 내 몸에 해가 될까봐 경계하고 있다. 

당신에게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남편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 아프기 때문에 너무 겁이 난다. 아픔을 참으려고 하지만 통증은 점점 더 악화되고, 결코 끝이 나지 않는다.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남편이 억지로 관계를 가지려고 나를 벽으로 밀어 붙일 때 나는 더 이상 굴복하지 않는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빠져 나와야만 했다. 우리는 별거했다.  
나는 또 발바닥과 아킬레스건에도 통증이 있다. 오른 발만 그런데 춤을 추면 악화된다. 나는 춤추는 것이 너무 좋다. 영국식 민속춤을 추는데 단체로 줄을 서서 추는데 때로는 원을 그린다.  

식욕부진, 우울증의 경험은?
20세 때 독일에서 자원 봉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룸메이트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소아병원에서 일하는데 수간호사가 훈육주임 같았다. 다리가 골절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마치 우리에 갇힌 동물들과 비슷해서 걷지 못하고 머리를 앞뒤로 오락가락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움직이는 동물들처럼 보였다. 수간호사가 나에게 고함지르고 겁을 줄 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겁이 나서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는 우울해져서 식욕을 잃었다 몸무게가 40kg 까지 줄었다. 

나는 몽롱해지면서 해리상태로 빠졌다. 몽롱해지면서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거의 날 것 같았다(손을 하늘로 뻗으면서). 중력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몸에서 빠져나와 공중에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걷고 있으면 공중에 떠서 걷는 것 같았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뛸 수 있었다. 이런 느낌 때문에 나는 뛰는 것을 좋아한다. 뛰고 있으면 마치 나는 것 같다. 땅에서 이륙하면서 자유롭게 해방되는 느낌. 이런 꿈을 자주 꾸곤 했다. 꿈 속에서 날개를 펴고(두 팔을 날개처럼 피면서) 달리다가 이륙한다. 중력을 느끼지 못한다. 자유롭다. 몸이 더 이상 중력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바람이 느껴진다. 바람이 나를 위로 올려준다(소용돌이 모양으로 위로 올라가는 손짓). 일단 어떤 높이에 오르면 안전하다. 사람들이 나를 잡지 못한다. 탈출했다는 느낌. 인간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 전혀 힘을 안들이고 날고 있다. 그저 바람이 나를 실어다 준다. 마치 새처럼(양 팔을 날개처럼 활짝 피면서) 아주 가끔씩만 날개를 퍼덕거리면 된다. 그냥 바람을 탄다. 열기류를 탄다. 힘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밤에 자주 꾸는 꿈은?
근친상간에 관련된 꿈을 꾸곤 했다. 아빠, 엄마, 여동생, 삼촌 등이 꿈에 나온다. 꿈에서 나는 그들과 성관계를 가진다. 노골적으로 음란해서 꿈 속에서는 관계를 즐기지만. 깨고 나면 충격을 받는다.   꿈에서 삼촌이 나에게 몰래 접근하다. 나를 침대에 던지고 장난스럽게 키스를 한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숙제를 하기 위해 삼촌과 면담을 했다. 삼촌은 나를 차에 태우고 사람이 없는 길로 데려가더니 내가 처녀냐고, 키스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겁이 났다. 아주 불쾌했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뭘 해야 될지 몰랐다. 

면담하는 도중 치료자는 환자의 손짓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JK는 몇 가지 특징적인 손짓을 보였는데 소용돌이(spiral), 물결(wave), 상승/하강, 내려치기, 밀어내기, 움츠리기, 날개피기 등이 그것이다. 이와 아울러 나타나는 환자의 표현은 갇혀있기, 처벌, 끌려다니기, 괴롭힘을 당하기, 날기, 탈출, 자유, 바람을 타기 등인데, 이는 동종의학적으로 새(bird)에 관련된 주제들이다. 폭력, 덮치기, 강간, 살해, 토막내기 등은 맹금류(raptor)에 해당되는 주제, 무리에서 밀려나기, 공동양육 등은 무리를 지어 사는 새임을 시사한다. 또한 음식에 대한 공포, 정화(cleansing), 발구르기 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콘도르과(Cathartidae)와 관련된 표현이다. 

정리해보면 ‘소용돌이 모양으로 상승, 하강하는, 바람을 타고 힘들이지 않고 날면서 집단생활을 하는 맹금류 중에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 새’의 에너지와 유사한 에너지를 이 환자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고른 동종약은 Cathartes aura.

JK는 동종약 Cathartes aura를 금요일에 복용하였는데 토요일에 통증이 거의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일요일 바닷가에 갔을 때 통증이 다시 생겼지만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바닷가에만 가면 통증이 심해져서 그 동안 바닷가를 가지 않고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월요일에 통증은 다시 좋아졌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지 3주 반. JK의 통증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긴 했지만 빈도와 강도는 훨씬 줄었다. JK는 ‘최근 2-3일간은 아주 좋은 편이다.(통증 점수 0-1, 과거에는 9-10). 지난 주말에 남편과 만났는데 울면서 화를 냈더니 정화(catharsis)가 조금 되는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눌러 놓았던 것 같았는데 이제는 놓아버릴 수 있을 것같이 느꼈다. 정화가 일어난 후 방광 증상도 좋아지는 것 같다. 이제 소변 볼 때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고 자신의 상태를 기술하였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지 5주. JK가 기술한 자신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1주일 전 초콜렛을 먹고 난 후 증상이 악화되면서 up down (손을 물결처럼 움직이면서)이 있었다. 소변 보는 도중에는 괜찮지만 다 본 후 통증이 있었다. 악화되어도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아진다. 과거에는 안 좋은 것을 먹은 후 악화되면 2-3일은 걸려야 돌아왔다.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자신이 감정적으로 좀 더 강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서 살펴 볼 수 있고, 전에는 이야기 꺼내기도 힘들었던 것들을 지금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응어리에서 해방된 것 같은 느낌. 해방이란 정화와 같은 것, 터져서 나오는 것 같다. 비로소 과거에 경험한 죄의식과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치료를 시작한 주 2년이 지났다. 그 동안 그녀의 통증은 재발하지 않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체중도 정상이 되었고 JK는 밝고 명랑하고 건강하고 매력적인 여인으로 변하였다.

JK가 앓고 있는 간질성 방광염(interstitial cystitis)은 통증성 방광증후군 (painful bladder syndrome)이라고도 부르는데, 치골상부의 통증(방광통)과 절박뇨, 야간뇨, 그리고 주간 빈뇨의 증상으로 특징지어지는 증후군으로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아직 없는 형편이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하거나 신체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만성 통증 증후군이 생길 위험이 높고, 간질성 방광염(통증성 방광증후군) 환자군에서 성폭행이나 신체적 외상의 과거력이 대조군보다 더 많은 비율로 발견된다고 한다. 

JK의 경우에도 어린 시절 성폭행과 신체적 외상을 받아서 경험한 공포, 분노, 슬픔, 죄의식의 감정이 억압되어 응어리로 남아있으면서 신체적으로는 심한 통증과 방광염의 고통을 겪어 온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JK가 복용한 Cathartes aura의 원료는 칠면조 수리(turkey vulture)로 콘도르과(Cathartidae familty), 콘도르속(Cathartes genus)에 속한다. 이 새는 썩은 고기를 먹고 살기 때문에 청소부(scavenger)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새의 라틴어명 Cathartes는 정화(cleansing, purifying)라는 뜻이어서 죽은 시체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의미, 정신적으로는 해묵은 감정의 응어리가 떠오르면서 배출되는 카타르시스(catharsis), 신체적으로는 독성물질, 배설물의 배출, 해독, 정화와 연관되어 있는데 JK 역시 단식을 하면서 자기 몸을 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단식이나 해독요법 만으로는 몸과 마음 전체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치유는 얻을 수 없었다. 진정한 치유는 정화가 몸과 마음 전체에서 일어나야 한다. JK는 심층면담과 이를 바탕으로 고른 동종약 복용을 통해서 몸과 마음 전체의 정화 또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면서, 성폭행과 신체적 외상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간질성 방광염의 심한 통증에서도 해방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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